낯설게 하기: 박천욱의 오브제 및 이미지의 다른 행로들 _ 레이첼 구겐버거, 2012

낯설게 하기: 박천욱의 오브제 및 이미지의 다른 행로들

박천욱의 예술적 카섹식스(cathexis)의 목록은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을 강조하는데, 시각적 원근법과 차원성(dimensionality)을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변형한 레디메이드(ready-made)들과 조립된 오브제가 결합된 조각, 사진 및 설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동 전략을 이용해 오브제들의 평행우주를 창조하는 작가는 “오브제들 스스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한다. 이 오브제들의 역할은 세 개의 시리즈에서 구체화되는데, 각각은 오브제와 공간 사이의 조화를 고려하는 서로 다른 방향의 개념적 범주들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Wrapping> 시리즈에서 일상적인 오브제들은 나열되고, 그 형체가 모호해지고 기능이 무효화될 때까지 여러 겹의 셀로판지에 감겨 번데기 같은 모양이 된다. 예를 들어, <The Sunkist Cannot Stand Alone> (2006)에서는 의자 하나가 더 이상 설 수 없어져 그 존재 이유가 부정될 때까지 감긴다. (작품명의 Sunkist는 가구 브랜명이다). <I will go home early> (2006)는 위대한 문명들과 문명 이전의 시대를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즉, 자전거 하나가 머리나 팔, 다리가 없는, 인간과 짐승 형상의 중간에 있는 형체로 변형된다. 동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채색이 된 이 작품에서는 동물은 어떻게 걷는지도 모르는 채 산업기계로 변형되었다. <Tapench> (2006)에서 박천욱은 탑과 벤치를 함께 싼다. (작품명은 ‘탑’과 ‘벤치’를 조합한 것이다). <House Cleaning> (2006)에서 작가는 좌대 위에 서 있는 실물 크기의 만화 같은 로보트 형상을 그린다. 그 모습이 모더니즘적인 조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빗자루나 갈퀴같이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대량생산품을 보여 주는 엑스레이(x-ray) 사진들이 같이 전시된다. 원근법의(라틴어로 시점인 <perspicere>는 “투시하다”는 의미이다.) 중심 아이디어를 연구하면서, 이 변형들은 결국 오브제와 그 의미의 구분을 뒤엎는다.

박천욱의 작업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or ostranenie)의 기법들과 관련이 있다. 비평가 토르 슬로브스키(Viktor Shklovsky)가 1917년 에세이 『장치로서의 미술(Art as Device) 』에서 처음 쓴 말로, 낯설게 하기는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들로 보여주는 행위를 뜻한다. 그 연장선에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디페랑스(difference) 개념도 불어 디페레(différer)가 갖는‘다르다’와 ‘결정을 미루다’의 이중적 의미가 개입된 것이다. 박천욱은 실제로 이상한 것들을 만들고 의미를 변형하는데, <Silent Smile> 연작의 한 작품은 왜곡된 이미지가 흔히 반사에 의한 특정 위치나, 원통형의 거울, 특정 각도에서 볼 때 바르게 보이는 초기 르네상스의 아나모르픽 원근법을 떠올리게 한다.

<Silent Smile>에서 박천욱은 조형적인 장면들을 서로 다른 장소와 밴티지 포인트에서 사진찍었다. <Thinking about Village> (2007)는 간결하면서도 첫눈에는 속기 쉬운 예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단일 시점에서 어떤 거리의 장면을 보여준다. 중앙에는 세계지도 위에 놓인 책상 위의 은하계 모형을 위에서 찍은 사진이 삼각대에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여기서 사진처럼 보이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삼차원의 조형적 장면이다. 사각형의 사진 틀이 최종 오브제에서 가시적인 것을 제한하는 개념적 범위를 제공한다. 이미 정해진 틀의 경계에 말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것이 차원적 축소를 통해 조각에서 어떤 것이 잘릴 것인가를 (즉, 시야에서 제외되는 것을) 결정한다. 작가는 그런 다음 그 오브제를 놓을 받침대를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시점들에서 기록하며 여러 상황들에 놓는다. 그 오브제는 이제 평면을 대체하는 3차원 입체 형상으로 존재한다.

<Sahara Goldfish> (2008)의 오브제는 후드 달린 스웨터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사람의 모조품이다. 그 오브제는 계단에서, 화단에서, 그리고 통 위에서 사진 찍힌다. 길거리 장면에서는 통의 우측에 있는 원형의 거리 거울이 조각 작품의 뒷부분을 보여주며 책상의 날카롭게 잘라진 모서리들과 함께 조각의 재료인 흰 석고를 드러낸다. 최종적으로 오브제와 함께 세 사진이 모두 전시된다. 오브제의 영상을 포함시킴으로써 오브제의 일생의 능동적인 요소로서의 시간의 경과를 암시한다.

그 후에 만들어진 <Silent Smile> 연작의 작품들은 다시 레디메이드로 돌아온다. <Untitled> (2011)에서는 하나의 큰 쇠 그릇에서 사각형의 철판이 잘려지고, <Untitled> (2011)라는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에서는 빨간 여과기로부터사각형의플라스틱판이오려지는데, 둘 모두 조형적으로 사각형의 사진적 틀을 전제로 한다. 야외 공간들에 위치했고 원위치에서 사진 찍힌 이 오브제들은 그것들 주변의 환경과의 최저 공통분모에 대해 연관시키고, 자연과 기능 사이의 근본적인 구분을 나타낸다. 박천욱의 조작된 레디메이드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빛에 반사적이고 구멍이 많은 형태들과 함꼐 그것들의 표면은 각각의 이미지를 보는 행위에 대한 시각 에세이로 변형시킨다.

<Silent Smile>의 관점에 의한 착시는 그것들의 직선 창문 구조들 속에서 회화적인 구성들을 상기시키며 트롬프뢰유 그림의 기법과 함께 오브제가 소품이 되는 세트 디자인을 암시한다. 트롬프뢰유 그림은 사물들이 3차원의 입체인양 착시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사실적인 이미지들을 이용하는 반면에 박천욱은 입체적인 오브제들을 변형, 꾸밈이나 배치를 통해 그것들이 평면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들어내는 데 이용한다. 박천욱의 이러한 아나모르포시스(왜상화법)의 과정은 이미지 ‘안’에 감춰진 눈속임 혹은 이런 평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을 통해 공유된다.

그의 가장 최근작 <Grow in the Middle>에서 박천욱의 기하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하다. 작가는 그림 화면의 가운데로부터 시작해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을 변형시켜 반사적인 좌우대칭의 개념을 표현한다. <What up Somehow> (2012)는 석유통, 물뿌리개와 호스 등 대부분 플라스틱 오브제들을 공업용 핸들에 연결해 조합한다. <Grow in the Middle> (2012)는 훌라후프, 양복 걸이, 교통 방벽 등으로 만들어진다. 혈관이나 DNA 분자들의 복잡한 시스템을 연상시켜 몸에 대한 암시도 피할 수 없다.

변형, 왜곡, 조립 사이를 오가며 박천욱은 오브제를 가만히 놔두지 않음으로써 어떤 핵심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작가는 왜곡의 정도에 따라 어느 것을 다른 어느것과 구분하고 작가는 이미지화가 차원성이나 시점, 그리고 비유적이거나 글자 그대로의 보는 방법들의 해석에 영향을 줌을 강조한다. 가득한 시각적 익살, 아이러니, 사회경제적 연관성, 박천욱의 오브제들의 의미는 그의 과정에 비하면 덜 중요한 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낯설어도 오브제들의 고의적인 혼란은 오브제와 이용 가치 사이의 부조화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박천욱의 오브제들은 평행의 다른 삶이 주어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들의 창조와 파괴에 대해 박천욱은 그것들이 온 바로 그 세상으로 다시 시선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레이첼 구겐버거 (독립 큐레이터)